나는 영어를 잘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하기와 쓰기보다는 읽기와 듣기에 익숙한, 한국식 영어교육이 길러낼 수 있는 인재상이라고나 할까. 토익은 900점을 넘겼으니 나름 나쁘지 않았지만, 영어로는 레알 한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수준.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애석하게도 액면가와는 다르게 21세기에 대학을 다녔다. 즉,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들 틈에서 외롭게 척화비를 쓰다듬으며 지냈다는 말이다. 교환학생이니 워홀이니 어학연수니 입국도장이 마를 새가 없이 사는 친구들을 보며 조용히 문명 5를 실행해 영국을 멸망시키곤 했다. 대학생인지 흥선대원군인지 모를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졸업시즌이 다가오며 어떤 회사의 무슨 직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