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일지 3

첫 번째 빌런 - 사라지는 자, H

첫 직장이었던 S 화학회사의 사람들은 대체로 온화했다. 성격이 급해서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도 있고, 느긋하지만 꼼꼼한 사람도 있는 일반적인 직장의 모습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 수준 안에서 급하거나 느긋했을 뿐, 성격이 폭급하여 사람을 쥐잡듯 잡지도, 오늘의 할일을 내년으로 미루지도 않았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첫 빌런, H차장을 제외하면 말이다. 9 to 6의 근무시간을 준수하던 S 회사의 출근시간은 암묵적으로 8시 반까지였다. 고일대로 고인 회사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업무시간 30분 전에 와서 주운비를 해야지 주운비르을!!!! 이라는 아주 익숙한 논리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들 별다른 불만은 없었는데, 미리 연락만 제대로 하면 개인 사정에 따라 약간의 조정은 가능했고 근태관리가 아..

[영업의 기억] 어쩌다 마주친 해외영업

나는 영어를 잘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하기와 쓰기보다는 읽기와 듣기에 익숙한, 한국식 영어교육이 길러낼 수 있는 인재상이라고나 할까. 토익은 900점을 넘겼으니 나름 나쁘지 않았지만, 영어로는 레알 한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수준.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애석하게도 액면가와는 다르게 21세기에 대학을 다녔다. 즉,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들 틈에서 외롭게 척화비를 쓰다듬으며 지냈다는 말이다. 교환학생이니 워홀이니 어학연수니 입국도장이 마를 새가 없이 사는 친구들을 보며 조용히 문명 5를 실행해 영국을 멸망시키곤 했다. 대학생인지 흥선대원군인지 모를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졸업시즌이 다가오며 어떤 회사의 무슨 직무를..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약 15년전 군대에서, 나는 인구절벽의 무서움을 몸소 체험했다. '인구가 얼마나 없으면 이런 애들까지 군대에 오나' 싶은 희대의 정예신병(* 뒤에서부터 읽어야 함)들을 보며 그래도 밖에서 안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길어야 2년도 안본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전역 후 스타트업을 경험해 보겠다며 야심차게 휴학계를 내고 1년간 또래들과 일을 할 때 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회사에서 슈퍼스타들을 경험하게 될 줄은 말이다. 조금 더 섬찟한 포인트는, 이 슈퍼스타들은 기본적으로 장기계약 상태라는 것이다. 나도 안짤리지만 쟤도 안짤리고, 그 안짤리는 쟤때문에 그나마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은 마치 독사에 물린 어린왕자처럼 스러져가는 처연한 광경이란.... 물론 이 카테고리를 생성한 이유는 누군가를 저격하..